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빌지워터 : 불타는 파도 (문단 편집) === 3막 4장 [*2] === >붉은 하늘 >먹이사슬 >화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종종 상상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개처럼 사슬에 묶인 채 바닷속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다행히도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단검을 놓치기 직전 수갑의 고리를 끊어냈다. 나는 산소를 찾아 몸부림치며 온몸을 옭아매고 있던 쇠사슬을 떨쳐냈다. 쇠사슬은 뱀의 이빨처럼 살갗을 파고들어 단단히 박혀있었다. 돌아보니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미동도 없었다. 멍청한 놈. 그의 목에 팔을 단단히 감아 붙들고서 수면을 향해 있는 힘껏 발장구를 쳤다. 묵직한 통증이 전신을 휘감고 우리를 물밑으로 끌어당겼다. 버텨야 한다. 어떻게든 물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그 다음은 방법이 있을 거다. 그 순간, 갑자기 사방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바다가 해를 집어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곧이어 물보라가 일었다. 물속에서 몸이 한 바퀴 뒤집혔다. 부서진 강철의 파편이 해류에 떠밀려 우리 곁을 스쳐 갔다. 뒤이어 대포 하나가 가라앉았다. 누군가 물속으로 빌지워터를 옮겨놓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총알, 돛, 사슬, 온갖 항해를 위한 집기들이 물속으로 쏟아졌다. 새까맣게 불탄 조타기와 시체들이 그 뒤를 이었다. 너무 많이 망가져 알아볼 수 없는 얼굴들이 해를 가리는 구름처럼 붉은 물밑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심연은 검은 아가리를 벌려 최후의 얼굴을 삼켰다. 폐가 터질 것만 같았고 다리는 풀려왔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속도를 높였다. 빨리 물밖에 다다라야 한다. 나도 모르게 들이킨 바닷물을 뱉어내려 애쓰며 손발을 휘저었다. 묵직한 손이 내 머리를 찍어 누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내 물 위로 올라오기까지 꼭 백 년은 지난 느낌이었다. 비린 소금물을 토해내며 거칠 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가슴이 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매캐한 연기에 목구멍은 타들어 가는 것 같고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말 그대로 불바다였다. 이 정도로 큰 불은 처음 본다. 온 세상이 화염에 휩싸인 것만 같았다. “젠장……” 나는 잔해들을 피해 헤엄치며 소리 내 웅얼거렸다. 갱플랭크의 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커먼 연기를 뿜어대는 잔해만이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불이 붙어 있는 나무판자들이 치익 소리를 내며 수면 아래로 무너졌다. 그때 화염에 휩싸인 돛이 우리를 정면으로 덮치며 쓰러졌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영영 바닷속으로 사라질 뻔했다. 돛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물을 때리며 수면 아래로 성난 짐승처럼 곤두박질쳤다. 아직 숨이 붙어 있던 사람들은 불을 피해 바다로 뛰어내렸다. 겁에 질린 새된 비명이 하나둘씩 꺼져갔다. 종말이 온다면 이런 모습일까? 잿더미가 떠다니는 붉은 바다가 사납게 출렁이고 있었다. 검붉은 수면이 달빛 아래서 환하게 빛났다. 낮과 밤이 동시에 한 자리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문득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어깨를 흔들어 보았다. 정신을 잃은 몸뚱이를 물에 띄우고 있느라 아주 죽을 맛이었다. 무겁게 늘어진 팔다리가 내 몸까지 짓누르고 있었다. 갈비뼈가 반은 부러져 뻐근하게 아려왔다. 그때 우리 옆으로 새까맣게 탄 선체가 떠밀려왔다. 그나마 다른 잔해들에 비해 단단해 보였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를 붙잡고 기어 올라갔다. 이걸 타고 항해를 할 수는 없겠지만 당장 숨 돌릴 시간은 벌어줄 것이었다. 그제야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코 밑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마구 두들겼다. 이러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콜록거렸다. 그는 바닷물을 한 대야는 족히 토해내고는 축 늘어진 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기침만 해대는 놈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멍청한 자식아! 기껏 보내줬더니 왜 돌아왔어!”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한참을 멍하니 있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네 방식대로 해보려고 그랬지.”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웅얼거렸다. “고집불통 인간은 어떤 기분인가 한 번 알아보려고.” 그러더니 또 소금물을 게워냈다. “윽…… 죽을 거 같아.” 칼날고기 떼뿐 아니라 더 끔찍하고 포악한 물고기들까지 우리 주변으로 몰려와 선체를 맴돌고 있었다. 고기밥이 될 수는 없기에 재빨리 물에서 발을 빼냈다. 그때 온몸에 부상을 입은 해적 놈 하나가 우리가 탄 선체를 붙잡고 매달렸다. 곧바로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바닷속에서 순식간에 두꺼운 촉수가 튀어나와 놈의 목을 휘감고 사라졌다. 먹이를 물었으니 잠깐 동안은 조용할 것이다. 수면 위로 보글보글 기포가 피어올랐다. 무언가 갈리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고기떼가 식사를 마치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나는 선체에서 나무판자 하나를 뜯어 노를 젓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나 물 위를 떠돌았는지 모르겠다. 팔은 아파져 왔고 감각도 없었지만 노 젓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선체 아래서 붉게 충혈된 눈동자들이 눈을 깜박이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새 트위스티드 페이트를 좇아 빌지워터까지 이르게 되었던 긴 인내의 시간을 머릿속으로 되새기고 있었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노 저을 힘도 없는지 눈을 감고 헐떡이더니 잠들어버렸다. 피곤이 몰려왔지만 눈을 부릅떴다. 쉬지 않고 끊어질 정도로 세차게 팔을 놀렸다. 그러다 대학살의 현장으로부터 꽤 멀어졌다는 느낌이 들 때쯤 기절하듯 드러누워 버렸다. 버려진 탄피가 된 듯 텅 빈 기분이 들었다. 빌지워터 만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거대한 혓바닥을 타고 목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수많은 시체들. 살아남은 놈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 난 어떻게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 거지. 나야말로 룬테라에서 제일 재수 좋은 놈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걸까? 이처럼 덧없고 이처럼 질긴 목숨이라니. 차라리 운이 없다고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지. 그러다 무언가 눈에 익은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쩌다 여기까지 떠내려온 건지, 놈들이 빼앗아간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중절모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모자를 건져 트위스티드 페이트에게 던져주었다. 그는 외출 전 거울 앞에 서서 매무새를 다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머리에 모자를 썼다. 많이 더럽혀졌지만 아직 제법 근사했다. “이제 네 총만 찾으면 되겠는걸.” “저기로 다시 기어들어가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하냐?” 손가락으로 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악취와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이내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공포에 사로잡힌 눈빛이었다. 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시간이 없어. 누가 벌인 짓인지 몰라도 빌지워터는 이미 난장판이고 상황은 더 안 좋아질 거야.” 그러자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물었다. “근데 총 없이 어떻게 살 건데?” “글쎄…… 필트오버에 유명한 총기 장인이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필트오버라……” 그는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거기로 돈이 모인다고 하더라.” 턱까지 괴고 한참 고민하던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랑 또 같이 다녀도 좋을지 모르겠네. 예전보다도 멍청해진 것 같단 말이야……” “나도 마찬가지거든? 이름이 ‘꼬인 운명’인 놈과 같이 다니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 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이 그따위 이름을 짓는대?”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폭소했다. “그래도 본명보단 낫지. 안 그래?” “그건 그렇지.” 나도 씩 웃어 보였다. 좋았던 옛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를 갈았다. “다시 나만 두고 내빼면 그땐 무조건 네놈 머리를 날려 버릴 거야. 뭐라고 해도 소용없어.”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입가에서도 미소가 가셨다. 붉은 바다를 떠도는 불탄 선체 위 두 사람.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우리는 곧 동시에 싱긋 웃어버렸다. 너무나 익숙한 웃음이었다.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예의 빈정대는 말투로 받아쳤다. “그러시든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